이야기/명인

소리꾼과 광대에 대해 알아보기

가야금 연주자 2025. 5. 2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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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를 하는 사람을 '소리꾼'이라고 한다. 한자말로는 '창자(唱者)'라고 한다. 소리꾼은 소리를 하는 사람, 창자는 노래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판소리를 하는 사람을 소리꾼이나 창자라고 하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판소리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광대(廣大)'라는 말이 가장 널리 쓰였다.  신재효는 소리꾼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광대가’라는 노래에서 제시했는데, 이때의 광대라는 말이 그러한 쓰임새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생전에 명창 박동진은 자신을 광대로 불러주기를 원했다. 그런가 하면 다른 많은 소리꾼들은 자신을 광대로 부르는 것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갖기도 하였다.


광대는 본래 ‘가면’을 뜻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가면을 쓰고 여러 가지 놀이를 하는 가면극 배우’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조선 중기쯤에는 광대라는 말은 인형극 배우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으며, 나중에는 여러 가지 연예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다. 근대에 이르면 이 말은 다시 판소리 창자를 주로 가리키게 된다.


그런데 광대는 연예 오락에 종사하는 기능 집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일에 종사하는 신분 집단이기도 했다. 연예 오락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신분적으로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분은 천민이었다. 그러니까 광대라는 말은 기능적으로는 우리의 민속예능을 담당하던 전문가 집단을 가리키지만, 신분적으로는 연예 오락에 종사하는 천민 집단이라는 뜻이다. 박동진이 자신을 광대로 불러주기를 원했던 것은 광대가 전문적인 기능인을 가리키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노래를 천직으로 삼는 전문가로 불러달라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광대로 부르는 데 대해 심한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은 광대가 천민 신분 명칭이었기 때문에 그러하였다. 그러니까 이들이 갖는 거부감은 천민이라는 신분에 대한 거부감이다.


예로부터 인간에게 음악과 놀이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개인이나 부족 단위에서는 물론이고, 국가 단위에서도 음악과 놀이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국가나 관청은 늘 행사들을 했고, 이 행사에는 반드시 음악과 놀이가 필요했다. 이런 행사를 위하여 국가나 관청에서는 평상시에도 음악과 놀이를 제공할 조직을 유지해야 했다. 이런 조직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고려시대에 이르면 음악을 담당하는 전문적인 악공과 연극이나 놀이를 주로 하는 광대들을 국가에서 관리했던 기록이 등장한다. 이들이 전승해온 예능들은 고사소리, 타령, 영산, 재담소리, 판소리, 탈놀이, 솟대타기, 땅재주, 농악, 기악 연주 등 전통 예능의 전 분야를 망라한다. 이들의 역할은 신분적으로 고정되어 세습되었다.


그런데 이런 역할을 하면서 국가의 요구에 응했던 남도 지역의 악공과 광대(놀이꾼)들은 모두 세습 무당의 가계에 속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남도 지역의 무당들은 다른 지역의 무당들과 달리 대대로 무업에 종사하여 무당이 되는 세습무가 중심이다. 그런데 이 세습무 집안의 남자들, 곧 무부(巫夫)가 광대로서 연예와 오락에 종사했다. 남도 지역의 세습무들은 천민으로서 신분적으로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타고나면서부터 무업에 종사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또 이들은 세습무들끼리만 혼인을 하였다. 자연히 이들은 고도의 기능을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 민속 예술의 대부분이 이들로부터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로 이 무당 집안의 남자들 중에서 대부분의 판소리 창자가 나왔다. 그런데 1894년 갑오경장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어 광대는 신분 해방을 이룬다. 게다가 대부분의 광대들이 주수입원이었던 과거 급제자들을 위한 행사마저 1894년 과거제도의 폐지로 사라져 버렸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판소리 명창처럼 내로라하는 광대들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로 1900년대 무렵에는 광대들의 상당수가 떠돌이 예인집단이었던 사당패로 흘러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전통적으로 광대들의 공연 종목이었던 것들이 사당패로 흘러들어가 대부분 광대들의 공연 목록에서 사라져 버리고 일제강점기에는 광대 신분의 사람들이 판소리와 줄타기 등의 일부 영역에만 남아 있게 되었다. 그래서 광대라는 말이 판소리 창자들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결국 ‘광대’가 판소리 창자를 가리키는 말이 된 것은 사회변화에 따라 광대들의 공연 영역이 판소리만으로 한정되어 남게 된 데 기인하는 것이다.

 

 

출처: 최동현 "명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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