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명인

판소리 명인 박동진

가야금 연주자 2025. 5. 1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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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진은 판소리 완창의 전통을 확립한 명창으로, 한국 판소리사의 중흥기를 이끈 인물이라 할 수 있다.
1916년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난 그는 16세에 소리의 길에 입문하여 김창진, 정정렬, 유성준 등 당대의 명창들에게 사사하였다. 다섯 바탕을 모두 익힌 그는 1960년대 말부터 《흥보가》, 《춘향가》, 《심청가》 등 판소리 완창 공연을 연이어 성사시켰으며, 이로써 판소리 전통의 본령을 무대 위에 되살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1969년의 8시간 《춘향가》 완창은 판소리의 내공과 체력, 서사적 구성력을 동시에 입증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완창이 단지 기술의 과시가 아니라 예술적 통합체로서 전승되어야 함을 실천한 인물이라 평가된다.
 
그의 소리는 맑고 고른 청구성(淸句聲)의 성음 위에 구성진 장단 감각과 탁월한 아니리가 어우러진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박동진의 창법은 정통제(正統制)의 계보를 따르면서도 고유한 해석과 음색을 바탕으로 하여 독자적인 음풍을 이루었다. 단순히 스승의 소리를 답습하기보다는 자신의 성음과 호흡을 중심으로 새로운 판을 구성하는 창조적 접근이 돋보였다. 특히 아니리에서 나타나는 언어 감각과 재담은 듣는 이로 하여금 웃음과 감탄을 자아내게 했으며, 대중과의 소통 능력이 뛰어난 명창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의 소리는 학습된 기술의 총합이 아닌, 오랜 내공과 예술혼의 발현이라 하겠다.
 
박동진은 창작 판소리 분야에서도 선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는 기존의 고정된 다섯 바탕 외에도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옹고집타령》 등을 재구성하였으며, 나아가 《예수전》, 《충무공 이순신》과 같은 창작 판소리에도 도전하였다. 이는 판소리의 고유 형식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현대의 서사와 주제를 담아낼 수 있음을 증명하는 시도였다. 특히 《충무공 이순신》은 영웅 서사를 판소리의 형식으로 구성한 대표작으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한 귀중한 예라 할 수 있다. 그는 판소리가 과거의 예술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
 
교육자와 예술 행정가로서의 역할 또한 그의 중요한 면모 중 하나이다.
1973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적벽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그는 같은 해 국립창극단의 초대 단장으로 취임하여 단체 예술의 기틀을 다지는 데 이바지하였다. 또한 1998년 고향 공주에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을 설립하고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그의 전수 방식은 이론과 실기의 균형을 중시하며, 소리꾼 개개인의 성음과 해석력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단순한 명창을 넘어 판소리 교육 체계 확립과 전승 문화의 제도화에 기여한 교육자라 할 수 있다.
 
박동진은 대중과 판소리를 연결한 인물로,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는 말로 그 정신을 집약하였다.
그는 지상파 방송 출연, 음반 제작, 강연 활동 등을 통해 판소리를 일반 대중에게 알리는 데 앞장섰으며, 판소리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전통 예술이 일반인에게 멀게만 느껴지던 시대에, 그는 그 경계를 낮추고 삶의 언어로 소리를 들려주었다. 공주에서 매년 개최되는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는 그의 예술 정신을 기리는 동시에 판소리의 저변을 넓히는 대표적 행사로 자리잡았다. 그는 전통 예술을 현재의 문화로 이어낸, ‘살아 있는 유산’이라 불릴 만한 인물이었다.

판소리 명인 박동진
판소리 명인 박동진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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