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명인

판소리 명창 안숙선

가야금 연주자 2025. 4. 10. 13:47

안숙선은 1949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예술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다. 외삼촌은 해금을 연주했고, 어머니는 시조와 가야금을 즐겨 국악이 생활 속에 자연스레 녹아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소리에 남다른 감각을 보였던 그는 12살의 나이에 서울로 올라가 조상현, 김소희 등 당대 최고 명창들에게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한다. 특히 김소희 문하에서 서편제 소리의 정수를 익히며 예인으로서의 기초를 탄탄히 다진다. 가야금 병창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그는 1970년대 이후 여류 명창이라는 틀을 넘어, 남녀를 불문하고 최고의 소리꾼으로 주목받는다. 안숙선의 예인으로서의 길은 어릴 적부터 이미 운명처럼 결정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는 동편제와 서편제를 모두 아우르는 보기 드문 명창이다. 김소희에게서 서편제의 섬세함을, 박봉술과 정권진에게서 동편제의 호탕하고 깊은 소리를 익히며 판소리 전반을 체계적으로 수련한다. 그 결과 판소리 다섯 마당, 즉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흥보가>를 모두 완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 된다. 그의 소리는 절제와 격정을 넘나들며,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섬세하게 감정을 조율한다. 관객은 안숙선의 소리를 듣는 동안 그저 감상자가 아닌 이야기 속 인물이 된 듯한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그는 단순한 전통 계승을 넘어, 소리의 미학을 오늘의 감각으로 재창조하는 데 성공한 예인이다.

안숙선의 판소리는 음악, 연기, 서사의 조화 속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그는 소리를 단순히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등장인물의 성격과 감정,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게 만든다. 예컨대 <춘향가>에서 이몽룡의 기개를 표현할 때는 맑고 단호한 소리로, <심청가>의 인당수 대목에서는 비극적 서사와 내면의 결단을 깊이 있게 전달한다. 그의 손짓, 눈빛, 발놀림 하나까지도 극의 흐름과 맞물려 관객의 감정을 이끌어낸다. 안숙선의 무대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소리로 삶을 재현하고, 청중이 그 삶을 체험하게 만드는 장이 된다. 그는 진정한 이야기꾼으로서, 소리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그려내는 데 탁월한 예술성을 보여준다.

무대 위의 명창으로서만이 아니라, 그는 전통 판소리의 보존과 전승에도 깊은 애정을 쏟는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사라져가는 고제 판소리를 복원하고 잊혀진 대목을 발굴하는 등 전통의 본질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또한 후학 양성에도 열정을 쏟아 젊은 소리꾼들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전통의 깊이와 엄격함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소리는 삶이고, 삶은 소리다”라고 말한다. 이 철학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예술을 대하고, 전통을 계승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안숙선은 단순히 자신의 소리를 완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판소리의 미래를 여는 스승으로서의 역할도 성실히 해내고 있다.

안숙선은 국내 무대를 넘어 세계에서도 판소리를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유럽과 북미,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공연하며 한국 전통소리의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세계에 소개한다. 해외 예술가들과의 협업, 창작 판소리 공연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전통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국제 무대에서도 주목을 받는다. 그의 공연은 단순한 민속예술이 아닌, 깊이 있는 인간의 서사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으며, 한국 전통문화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안숙선의 소리는 단지 한 사람의 예술이 아니라, 시대와 문화를 넘어 이어지는 한국인의 목소리다.

판소리 명창 안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