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학예사/한국사
2016년 준학예사 한국사 기출문제(답안 포함)
가야금 연주자
2026. 3. 25.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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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1】 고대사의 전개과정에서 나타난 다음 비석에 관하여 설명하시오. (50점)
1) 광개토왕릉비 (20점)
- 개요 및 건립: 고구려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414년 당시 수도였던 국내성(현재 중국 지안시)에 건립한 최대 규모의 비석입니다.
- 내용 구성: 비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 고구려의 건국 신화: 주몽의 탄생과 건국 과정 및 왕통의 계승을 기록하여 고구려의 정통성을 강조했습니다.
- 정복 사업: 광개토대왕의 '영락' 연호 사용과 백제(백잔), 신라, 숙신, 비려 등을 정벌하며 영토를 확장한 업적을 연대순으로 기록했습니다. 특히 '신묘년 기사'는 당시 동아시아 국제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입니다.
- 수묘인 제도: 왕릉을 지키는 가구(수묘인)의 편성과 관리 규정을 상세히 적어 왕실의 권위를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 역사적 의의: 5세기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과 독자적인 연호 사용을 통해 고구려인의 자부심을 보여주며, 당시 동아시아 정세를 파악하는 핵심 금석문입니다.
2) 부여 사택지적비 (10점)
- 개요: 백제 의자왕 대의 대좌평이었던 사택지적이 은퇴 후 절을 세운 인연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1948년 부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 내용: 세월의 덧없음과 인생의 허무함을 한탄하며 불교에 귀의하여 절과 탑을 세웠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 역사적 의의: 1. 사상적 측면: 당시 백제 귀족 사회에 유행했던 도교적 인생관(무위자연, 허무주의)과 불교 신앙이 융합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2. 문화적 측면: 세련된 사륙변려체 문장과 우아한 글씨체를 통해 백제 문화의 높은 수준과 한문학의 발달 정도를 증명합니다.
3) 진흥왕 순수비 (20점)
- 개요: 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포함한 영토 확장 후, 왕이 직접 새로 편입된 지역을 시찰(순수)하고 그 경계를 확정하며 민심을 살핀 것을 기념해 세운 비석들입니다. (북한산비, 창녕비, 황초령비, 마운령비 등)
- 주요 내용:
- 영토 획정: 신라의 비약적인 영토 확장과 한강 유역 확보라는 전략적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 순수 목적: 왕의 위엄을 과시하고, 점령지 백성들을 무마하며 충성을 다짐받는 유교적 통치 이념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 수행원 기록: 비문 끝에 왕을 수행한 관리들의 관등과 직책이 적혀 있어 당시 신라의 관제와 사회 구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합니다.
- 역사적 의의: 6세기 신라가 주도권을 잡는 과정을 보여주며, 특히 북한산비는 조선 후기 김정희에 의해 고증되어 그 가치가 재발견된 역사적 배경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 2】 다음은 개항이후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다. 각 사건이 일어난 원인, 과정, 결과 및 의의를 서술하시오. (50점)
1) 갑신정변 (25점)
- 원인: 1. 내적 원인: 개화 정책의 방향을 둘러싸고 온건개화파(친청)와 급진개화파(친일)의 대립이 심화되었습니다. 급진개화파는 청의 간섭에서 벗어나 근대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습니다. 2. 외적 원인: 청일전쟁의 전초전 격으로, 청이 베트남 문제로 조선 주둔군 일부를 철수시키자 일본의 군사적 지원 약속을 받은 급진개화파가 거사를 결정했습니다.
- 과정: 1884년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하여 정변을 일으켰습니다. 14개조 개혁 정강을 발표하여 문벌 폐지, 조세 개혁 등을 주장했으나, 청군의 개입과 일본군의 퇴각으로 '3일 천하'로 끝났습니다.
- 결과 및 의의:
- 결과: 한성 조약(조선-일본)과 텐진 조약(청-일본)이 체결되어 청·일 양국군의 철수와 향후 파병 시 상호 통보가 합의되었습니다.
- 의의: 근대적인 민족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최초의 정치 개혁 운동이었으나, 외세(일본)에 의존하고 민중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한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2) 동학농민운동 (25점)
- 원인: 1. 사회적 모순: 조병갑과 같은 탐관오리의 가혹한 수탈과 삼정의 문란으로 농민들의 생활이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2. 외세 침략: 개항 이후 일본의 경제적 침탈(미곡 유출 등)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었습니다.
- 과정:
- 제1차 봉기: 고부 민란을 시작으로 백산에서 창의하여 황토현·황룡촌 전투에서 승리하고 전주성을 점령했습니다. 정부와 전주 화약을 맺고 집강소를 설치하여 자치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 제2차 봉기: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내정 간섭이 심해지자 '항일 구국'을 내걸고 재봉기했으나,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근대 병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에 패배했습니다.
- 결과 및 의의:
- 결과: 농민군의 개혁 요구 중 일부는 갑오개혁에 반영되었으나, 지도부 체포와 탄압으로 좌절되었습니다.
- 의의: 반봉건·반외세 성격을 띤 최대 규모의 민중 운동입니다. 아래로부터의 개혁 의지가 결집된 사건으로, 이후 항일 의병 투쟁의 모태가 되었으며 한국 근대 민주주의 원류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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